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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다이어리

겨울강릉여행

 이번 연말 휴가에 2박 3일 동안 나 홀로 동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기분을 내보고자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는 mt를 가는 것 같은 학생들, 음식을 까먹는 사람들, 복도를 오가는 아이들로 북적대서 왠지 모를 추억들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5시간 동안의 긴 여정을 끝마치고 드디어 정동진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해는 져 있었고 서너 명의 사람들만이 역 앞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숙소를 잡으려고 하는데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아줌마가 다가와 방을 구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몇 마디 나누다가 알게 되었는데 정동진의 숙박업소는 강릉시에서 보조해주어서 기차표를 가지고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하였다. 덕분에 싸게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 일출을 보러 나갔을 때 어젠 언제 그랬냐는 듯 어디선가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날 운이 좋게 날씨가 정말 좋았고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다. 오메가가 제대로 보였는데 해 뜨는 방향을 모르고 있다가 끝물에 본 것이 좀 아쉬웠다.




 아침 식사 후 항구에 가서 사람들 북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강릉항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바다가 너무 예뻐 통일안보 공원부터는 버스에서 내려 해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잠시 등산로로 가다 산 정상에 오르면 강릉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고 하여 산에 오를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높은 곳에서 보나, 낮은 곳에서 보나 바다는 똑같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냥 계속 해안 길로 걷기로 했다. 

 가는 도중 군부대를 만나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하시동고분군이라는 이국적인 풍경의 장소를 지나 하시동리라는 마을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바다는 보이지 않고 대신 오대산을 배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변은 고요하리만큼 조용하고 평온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맟선 풍경에 지루하진 않았다.


 주문진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 철로가 있는 해안가와 푸른 하늘에 이어지는 시골 풍경들, 그리고 왼편으로 눈 덮인 오대산의 모습이 가는 내내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오른쪽 위는 강동면 하시동리의 버스정류장. 이색적인 투명팻말 뒤로 그대로 비치는 하늘색이 아름답다.







  3시간을 더 걷고 나서야 강릉 앞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오의 햇살이 눈부시게 바다를 비추는 강릉항의 해안에 가까워져 갈수록 가슴이 설레왔다. 항구는 의외로 조용해서 많지 않은 어부들만이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잠시 항구를 둘러보다 강릉 여객터미널에 옆 5층 건물에 자리 잡은 커피숍을 발견하곤 잠시 쉬어갈 겸 들러보았다. 이런 전망의 커피숍은 처음이었다.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유리창 바로 앞으로 갈매기가 지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바다를 보며 4시간 동안 걸음에 지친 다리를 좀 쉬 다시 경포대를 향해 출발했다




강릉도보여행 코스. 정동진역에서 출발해 하시동리를 지나 강릉항, 경포대까지 약8시간의 도보여행을 하였다.



 소나무가 심겨 있는 해안 길을 지나 경포대에 도착했는데 이대로 바다를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웠고, 항구의 밤바다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주문진으로 향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주문진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내 예상과는 달리 주변은 휑하니 아무것도 없었고 밤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방을 구하러 다시 주문진 시내로 갈까도 생각했지만 버스 정류장 옆에서 "향호리민박촌"이란 간판을 발견하고 무작정 가보았다. 8가구 남짓한 민박집이 모여있는 마을이었는데 휴가철이 아닌 데다가 시간도 시간인지라 이미 불을 끈 집도 있었다. 한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리니 주인아주머니 나오셨고 그 뒤로 손자인 듯한 꼬마가 쪼르르 따라 나왔다. 

 대뜸 민박 되냐고 물어보니 예상치 않은 방문에 놀라셨는지 잠시 당황하셨다. 하기야 시린 겨울밤에 불빛도 안 보이는 구석진 어촌 민박집에 예약도 안 하고 혼자 찾아온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꼬마가 나보다 먼저 침대 위로 올라가 콩콩 뛰는 것을 아주머니가 나무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골집에 온 기분이었다. 방안은 아무것도 없고 그나마 있는 텔레비전도 고장 난듯했다. 방에 혼자 있자니 심심하고 잠도 올 것 같지 않아 주문진 시내로 나가 보았다. 아직 이른 저녁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그다지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항구로 가서 바다를 보며 혼자 홀짝거릴 술집을 찾아보았는데 도시의 술집 같은 곳은 없었다. 주문진은 비교적 외지인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덜 탄 조용한 어촌이었다. 대신 어시장 곳곳에 도루묵 굽고 있었는데, 도루묵 냄새에 들어가서 소주라도 한잔할까 했지만 혼자 마시기가 내키지 않아 시장집에서 저녁을 간단히 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도루묵 철이었다.


                                                                                                     주문진항의 정박된 배



 다음날 서울 사는 친구랑 찌개를 해 먹으려 도루묵 몇 마리를 사 들고 떠나기 전에 항구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떠나려고 생각하니 뭔가 아쉽고 섭섭했다.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겨울의 강릉은 휴가철처럼 시끌벅적하고 흥미진진 한 곳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경관과 조용한 어촌 풍경들에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번 여행은 나름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고 초지일관 아무런 계획 없이 움직인 여행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떠났는데 처음에는 좋다가 고작 하루 지나고 나니 그것도 지겹고 사람이 그리워졌다. 그동안 쌓였던 복잡한 심경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이었는데 막상 탁 트인 하늘과 바다를 보니 복잡한 생각들은 사라지고 모든 게 단순하게 느껴졌다. 내가 정리해야 할 건 버려야 할 후회와 미련들이었다. 어쩌면 난 그저 쉬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처음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 여행이 됐지만 보고 싶은 바다는 실컷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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