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보는 것

본 아이덴티티 감삼평

내가 제일 처음 본 '본 시리즈'는 공교롭게도 본 얼티메이럼이었다. 

그때 남성미 넘치는 주인공 캐릭터와 기존 액션 영화와는 다른 리얼리티 넘치는

액션에 흡입되었던 기억이 있더랬다.

나중에 이 영화가 '본 아이덴티티','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럼'으로 이어지는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라는 것을 알았고다른 시리즈도 꼭 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다.

 

사실 '본 얼티메이럼'은 내용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액션하나 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영화였고 다른 시리즈를 보고 싶은 이유도 그냥 액션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게 벌써 6년 전 얘기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몇일 전 우연히 '본 아이덴티티'를 TV에서 보게 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라는 감상평이 나오는 영화다.

'본 얼티메이럼'보다는 액션이 화끈하진 않지만 이 영화에서는

액션 외의 내용면에서도 볼만한 요소가 있었다.

 

제임스 본그는 CIA 비밀 요원으로 임무 수행 중 실패하고 바다에 빠진다.

한 어부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게 된다.

한편 CIA수뇌부는 프로젝트의 기밀 유지를 위해 그를 제거하려 하고,

제임스 본은 CIA의 암살 시도를 막으며 자신이 누군지 알기 위해

단서를 하나하나 찾아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있는데 바로마리이다.

제임스 본이 스위스 은행다음으로 가는 곳이 미국 대사관인데

마리가 대사관 직원과 얘기 하는 것을 듣고 마리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본은 마리에게 거액에 돈을 주면서 자신을

파리까지만 태워달라고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 이 무슨 생뚱맞은 설정인가 싶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줄 바에 아예 돈을 더 주고 차를 달라고 할 수도 텐데

왜 굳이 태워달라고 한단 말인가?

이 장면에서 이 영화도 어쩔 수 없이 [영웅 옆엔 미녀]라는 기존영화의 공식을 따라간다는

생각 외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마리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본 만큼이나 심도 있는 비중을 맞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리와 본이 파리에 있는 본의 집에 도착했을 때 CIA 요원의 공격이 

시작된다다행히 요원은 제거했지만 그때부터 본과 함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 위험의 의미가 된다쫓아오는 경찰을 따돌리고

본이 돈다발을 숨기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는

갈등한다차와 본을 버리고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본과 함께 갈 것인가.

이 장면에서 나는 "저 여자 100% 도망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는다왜 그랬을까?

본을 좋아해서뭐 다음 장면에서 본과의 섹스신이 있는데

마지막 장면을 빼놓고 그 후로 둘의 로맨스에 관한 스토리 전개는

없다마리가 본을 좋아하게 돼서 본을 따라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마리는 6년 동안 유럽의 각 나라로 거처를 옮겨가며 집시처럼 

살아온 여자로 대사관에 간 이유도 비자를 받기 위해 서이다.

본이 기억상실증으로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마리는 거주지가 정해져 있지 않고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이다.

어찌 보면 자신이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초상이 바로 마리인 것이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지 못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길을 확실히 갖고

있고 신념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을 따라간다.

스스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는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싶고

어떤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학교 다닐 땐 선생님들이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 하기에 왜 그런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채 짐승처럼 공부하고 대학생 때는 좋은 스펙을 쌓아야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는 말에 스펙 쌓기 바쁘다.

너도, 나도 재테크를 한다기에 돈을 왜 벌어야 되는지도 모르는 채

재테크를 하고 공무원이 좋다기에 대학교학년에 휴학계 던지고 공무원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인생은 너무 복잡하고 확실한 것이 없다.


한데이런 불확실 속에서도 뭔가 하고 싶은 것목표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그들이 가진 것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그런 것을 갖고 싶어서 따라가 보고 싶다.

저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해보면 나도 뭔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은행에서 이미 거금을 찾은 본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다음 단서가 있는 호텔로 갈 필요가 있었을까?

나라면 가지 않는다

적들이 그 호텔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파리에 있는 본의 집에도 미리 매복한 적들인데 그 호텔이라고 매복을 안 하고 있겠는가?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아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목숨까지 무릅쓰며

그 호텔로 기어들어 간단 말인가?

하지만 본은 이렇게 얘기한다. "난 내가 누군지 알아내러 가겠어."

마리에게 던진 그 말은 너무나 단순 명료하고 분명한 목표이며 의지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리가 위험을 무릅쓰고 본의 모험에 동참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초점은 바로 본의 각도로 보나 마리의 각도로 보나 'IDENTITY'바로 정체성인 것이다.

 

영화가 막바지에 이르러 본이 드레 드스톤 프로젝트를 계획했던 콩클린과

싸우는 장면에서 이 주제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콩클린넌 미국의 재산이야!

이제부터 난 내 길을 가겠어. (I'm on my own side now.)

 


 

'사랑 > 보는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fore Sunrise  (0) 2010.12.20
타인의 삶  (0) 2010.12.07
Rumble Fish 1983  (4) 2010.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