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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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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밤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죽은 이가 저 별로 올라갔을까? 명복을 빌어주려다 이제는 빌 대상도 없음에 관두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의 죽음. 어떤 사람은 죽음과는 정말 상관없는 사람처럼 잘 살다가 어느 날 병에 걸리고 마치 죽을 날이 정해진 것처럼 오래 앓지도 않고 세상을 떠난다. 작년에도 그렇게 떠난 이가 있었다. 그는 죽기 전 왜 울었을까? 그렇게 신 앞에 태연하였지만 정작 죽음이 찾아오니 살고 싶었던 걸까? 삶은 고통이라지만 그래도 죽긴 싫었던 걸까? 아니면 아쉬움이 남았던 걸까. 나도 내일 죽는다고 하면 눈물이 흐를까?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요즘 TV에서 나오는 광고 중에 이런 게 있다.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미국의 작가 헬렌 켈러의 글이라 한다.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자문해 보았다. 첫날은 바다를 보고 싶다. 둘째 날은... 둘째 날은... 무언가 떠올려 보려고 해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야만 하는 걸까? 죽기 전에 무언가하고 싶다면 사는 동안 그것을 사랑했고, 더는 그것을 할 수 없음이 아쉬운 것일 것이다. 헬렌 켈러는 분명 삶을 사랑했을 것이다. 가족, 친구, 여인, 이웃, 매일 아침에 찾아오는 희망, 그리고 거리, 빵 가게, 이웃..
표류 이런저런 얘기들로 채워져 있는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보니 별 내용 없는 내 블로그는 메마른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어느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인 것 같은 그 사람의 블로그는 온통 자기만의 색깔들로 채워져 있어 자기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어쩐지 고독할 것만 같은 캐릭터를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자주적인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 사람만큼이나 내 삶을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고, 삶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자기 연민과 거짓으로 채운 시간에 대한 성찰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의무와 책임이라는 틀에 갇혀 이제는 나만의 시간도 줄어들고 점점 평범해지고 있는 지금, 나의 세계를 버..
어둠의 양면 달리는 버스 안, 밖은 어둠이 내리고 차는 가로등이 듬성등성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나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음영을 바라보고 있다. 어둠 깊숙이 보이는 산기슭을 보면서 낮의 그곳을 그려본다. 그러고 보니 왠지 모를 두려움과 거리감을 주는 그곳도 그리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각이 좁아져서 그렇게 느껴질 뿐 어둠이란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다.` 어둠이 내린 들판,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나는 짧은 걸음을 나섰다. 보리밭 위를 덮은 어둠이 산을 저만치 뒤로 물렸다. 이렇게 개방된 곳에 이상하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걸을수록 주위가 점점 고요해져 간다.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종이가 바람에 떨고 있다. 저 어둠 속에 누군가 있는 거 같아 다가가서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