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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토니안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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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요즘 TV에서 나오는 광고 중에 이런 게 있다.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첫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미국의 작가 헬렌 켈러의 글이라 한다. 사흘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자문해 보았다. 첫날은 바다를 보고 싶다. 둘째 날은... 둘째 날은... 무언가 떠올려 보려고 해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무언가 꼭 하고 싶은 게 있어야만 하는 걸까? 죽기 전에 무언가하고 싶다면 사는 동안 그것을 사랑했고, 더는 그것을 할 수 없음이 아쉬운 것일 것이다. 헬렌 켈러는 분명 삶을 사랑했을 것이다. 가족, 친구, 여인, 이웃, 매일 아침에 찾아오는 희망, 그리고 거리, 빵 가게, 이웃..
표류 이런저런 얘기들로 채워져 있는 다른 사람의 블로그를 보니 별 내용 없는 내 블로그는 메마른 내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 어느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인 것 같은 그 사람의 블로그는 온통 자기만의 색깔들로 채워져 있어 자기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어쩐지 고독할 것만 같은 캐릭터를 보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 누구보다 자주적인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 사람만큼이나 내 삶을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고, 삶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자기 연민과 거짓으로 채운 시간에 대한 성찰들이 머릿속을 오갔다. 의무와 책임이라는 틀에 갇혀 이제는 나만의 시간도 줄어들고 점점 평범해지고 있는 지금, 나의 세계를 버..
겨울강릉여행 이번 연말 휴가에 2박 3일 동안 나 홀로 동해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기분을 내보고자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향했다. 기차 안에는 mt를 가는 것 같은 학생들, 음식을 까먹는 사람들, 복도를 오가는 아이들로 북적대서 왠지 모를 추억들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5시간 동안의 긴 여정을 끝마치고 드디어 정동진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해는 져 있었고 서너 명의 사람들만이 역 앞 기념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숙소를 잡으려고 하는데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아줌마가 다가와 방을 구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몇 마디 나누다가 알게 되었는데 정동진의 숙박업소는 강릉시에서 보조해주어서 기차표를 가지고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하였다. 덕분에 싸게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 일출을 보러 나갔을 때 어젠 언제..
어둠의 양면 달리는 버스 안, 밖은 어둠이 내리고 차는 가로등이 듬성등성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나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음영을 바라보고 있다. 어둠 깊숙이 보이는 산기슭을 보면서 낮의 그곳을 그려본다. 그러고 보니 왠지 모를 두려움과 거리감을 주는 그곳도 그리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각이 좁아져서 그렇게 느껴질 뿐 어둠이란 그리 두려운 것이 아니다.` 어둠이 내린 들판,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나는 짧은 걸음을 나섰다. 보리밭 위를 덮은 어둠이 산을 저만치 뒤로 물렸다. 이렇게 개방된 곳에 이상하게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걸을수록 주위가 점점 고요해져 간다.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종이가 바람에 떨고 있다. 저 어둠 속에 누군가 있는 거 같아 다가가서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다...